2009.5.16 토요일...

 



창밖을 보니 많은 비가 오고 있습니다.

 

방에서 뒹굴다가 어머니에게 한마디 합니다.

"나가야제"

"비온디"

"비온게 나가야죠"
 

 

해마다 5.18이 되면 이곳 광주는 각종 행사로 시끌벅적 합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은 뒷전인 형식적인 행사...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또한 5.18때 학생이고 집과 가까워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타지역 사람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5.18이 조작이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봐야 입만 아픕니다.


 

 

 

우산을 챙겨 들고 국립 5.18 묘역으로 향합니다.

 

5.18 묘역은 집에서 가깝습니다.

1980년 당시에는 집과 항쟁지였던 도청과 가깝더니 지금은 묘역이 집과 가깝습니다.(도보로 약 15분)

 

5.18 관련 홈페이지

http://www.518.org/

 

 

 

1980년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학교를 약 40일간 쉬었습니다.

지도 우측 산수 우체국이 산수오거리인데 그곳에 탱크가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며 주먹밥을 나눠줬던 장소의 하나입니다.

 

지도 좌측 아래 부분이 당시 도청이며(지금은 무안으로 이전) 녹색선이 금남로 길이며 당시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도청 정문 앞에는 상무관이라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당시 사망자들의 관이 있던 곳입니다.

 


 

당시 상무관에 있던 시신들.

 

 

 

현재 살고 있는 곳과 5.18 묘역은 약 10km 가 되는데 차로 가면 넉넉잡아 10분이면 갈수 있습니다.

또한 그곳에는 망원동 공원묘지가 있는데 선친의 묘가 있어 자주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5.18 국립 묘지로 찾아가는 길은 쉽습니다.

동광주로 빠진 다음 곧바로 좌회전 하여 계속 직진합니다.

아래 화면과 같은 이정표가 나오면 좌회전하여 계속 직진하면 5.18 국립묘지가 보입니다. 물론 이정표가 잘되어 있어 찾기 쉽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습니다.

대신 2004년도 5월 2일에 촬영한 사진과 병행하여 올리며 사진에 날짜를 표기해 두었습니다.

 

 

2004년 5월 2일에 촬영한 사진을 보니 그때도 비가 왔습니다.

그때 촬영한 카메라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똑딱이로 촬영했습니다.

 

 

국립 묘지가 나오면 그곳을 지나쳐서 망월동 공원묘지로 갑니다(차로 1분 정도)
공원 묘지 입구에 구묘역이 있습니다.

 

이곳은 현재 모두 이장되었지만

5.18 구 묘역 입구

 

묘지 입구에는 전두환이 쿠데타 이후 담양을 다녀가면서 세운 비석이 있는데 이것을 통째로 뜯어다가 땅바닥에 묻어 놓았습니다.

구묘역을 들어 설 때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며 들어설 때는 꼭 밟고 지나갑니다.


구묘역의 모습.

처음 도착 했을 때의 모습


묘역 참배를 마치고 나올 때 모습이며

가운데는 학생들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2004년도 모습

 

2004년도 모습

 

 

 

모든 분들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하게 기억나는 분들만 열거합니다.

 

박승희

 

발췌

 

박승희 동지는 고교 재학 중 학생회장에 출마하였고, 전교조와 관련해 사회문제에 일찍 눈을 떳으며, 대학생활로 더욱 더 진지한 모습으로 운동을 고민해 왔다.

 

1991년 4월 29일, 전남대에서 벌어진 '고 강경대 열사 추모 및 노태우 정권 퇴진 결의대회' 도중 분신, "2만 학우가 잘 다니는 곳에 묻어 달라. 항상 함께 있고 싶다"라는 유서를 남겼으며, 몸의 상태가 호전되자 손가락으로 '노정권 타도. 미국놈들 몰아내자'는 표현을 힘겹게 쓰기도 하며 강인한 투혼을 보이다가 끝내 강경대 동지의 운구가 광주에 도착할 때인 5월 19일 운명, 5월 25일 광주 시민들의 애도 속에 광주망월동 묘지에 영원한 반미구국전사로 잠들었다.
 

강경대 열사는 1991년 4월 26일 학원자주화 완전 승리와 총학생회장 구출 투쟁 및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시위중 백골단의 쇠파이프 난타로 인해 심장막 내출혈로 병원으로 옮기던 도중 사망했으며,1991년 5월 20일 광주 망월동 민주화 묘역에 안장됐습니다.

그당시에 저는 시위대의 맨 앞에 서서 깃발을 든 관계로 안장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았습니다.
 

 

이철규 열사는 1989. 5.10. 오전 11시 30분 경 청옥동 제4수원지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는데 청옥동 제 4수원지는 제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수원지가 아니었는데 제가 어렸을 적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물을 막는 바람에 집이 수몰되어 이사하고 지금의 수원지가 된곳입니다.


 

이곳은 구묘역에서 신묘역인 5.18 국립묘지로 넘어가는 곳입니다.

예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뒷문으로 갔다고 했는데 바로 이곳이기도 합니다.


5.18 구묘지 설명

 

종합 안내도 입니다.
 

오늘 제가 간 순서는 15-14-12-13-10-9-7-6-5-8-4-3-11로 다시 15로 빠져나가 1-2번을 거쳤습니다.

 

물론 사진 배열순서도 이와 같습니다.


 

새롭게 바뀐 안내도

 

국립묘지로 들어서는 입구입니다.


입구에 핀 붓꽃


비가 많이 와서 촬영 중 흔들렸습니다. 손에 든 것이 많아서...^^

 

숭모루입니다.

포항에서 학생들이 참배를 왔으며 소감을 적은 듯 원고지에 열심히 쓰고 있었습니다.

 

숭모루에서 바라 본 모습

 

중앙의 건물이 사진 전시실이며 사진의 흰색은 플래시를 터트린 관계로 빗줄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사진 전시실에는 5.18에 관련된 사진을 볼 수 있으며 참혹한 사진들이 많아 게재하지 않습니다.


새롭게 단장한 묘지의 모습입니다.

 

 


 

비문 하나하나에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습니다.
모두 읽다 보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아빠!
사랑해요.
그날
천국에서 만나요.


유해를 찾지 못한 분들을 모셔 놓은 곳입니다.

 

유영봉안소입니다.

 

봉안소에는 희생된 영령들의 영정이 있습니다.


참배하는 곳입니다.

가운데의 탑은 손 모양을 하고 있으며 화합을 뜻한다고 합니다.

 

다시 구묘역으로 가는 길의 좌측 담에는 민중들의 항쟁에 관한 내용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4.19 혁명..동학 혁명..학생운동..등등...


도로따라 구묘역으로 가는 길

 



 

글 : 김준태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서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 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 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인간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만 뒤집어쓸망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 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산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지금 우리들은 다만

쓰러지고 쓰러지고 울어야만 하는가

공포와 목숨 어떻게 숨을

쉬어야만 하는가



아아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서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밖에 나아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린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해 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그런데 나는 당신의 아이를 밴 몸으로

이렇게 죽은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나에게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나는 또 당신의 전부를

당신의 젊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아 여보! 내가 결국

당신을 죽인 것인가요)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아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백 번 죽고도

몇백 번을 부활한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우리들의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