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제 속골과 수봉로로 접어듭니다.
이제까지 올레 길을 걸으면서도 유래를 몰라 수박 겉핧기식으로 돌아봤습니다.
집에서 책을 구입하고 자료를 정리하니 수봉로에 대한 글이 보입니다.
올레 군들은 무작정 올레 길을 떠나기 보다는 올레길을 만든 이의 책을 보고 약간의 지식을 쌓고 올레 길을 걸어가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올레 길을 만든이의 책을 추천합니다.

놀멍 쉬멍 걸으멍에 나온 수봉로에 얽힌 이야기
그런데 이 구간을 지나면서부터 답사팀은 난관에 봉착했다.
공물해안의 절경이 지척인데, 그곳으로 내려가는 길이 없었다.
대로변으로 나갔다가 법환마을로 돌아오는 수밖에.
"한번 거꾸로 걸어보게마씸. 요쪽에서 찾앙 안되민 거꾸로 찾아사길이 찾아집니께(한번 거꾸로 걸어봅시다.
요쪽에서 찾아서 안 되면 거꾸로 찾아야 길이 찾아지거든요)."
얼떨결에 팔자에 없는 탐사대장이 된 동철이의 제안에 따라,법환마을 입구에서 공물해안 쪽으로 걸어가봤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철이도 틀렸다. 이어지는 길은 없었다.
양쪽으로 모두 길이 없다는 이야기다. 아쉽지만 큰길로 우회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
래도 미련은 떨쳐지지 않았다. 그 구간만 두세 차례 더 탐사했다.
막막한 마음에 공물해안을 서성이며 기정을 향해 원망스러운 눈길을주는데,길이 끊어진 기정 위를 무언가가 올라가고 있었다.
흑염소 두마리 였다.
"야, 저거여! 흑염소 가민 사람이 무사 못 가크냐(야, 저거야! 흑염소가올라가면 사람이 왜 못 가니)?"
동철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남매는 엎어질 듯 달려가서 흑염소뒤를 쫓았다.
흑염소가 놀라서 길을 비켜주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염소야.'
성공이었다.
흑염소들이 가던 길로 가니 소철군락지로 올라설 수 있었다.
정신을차리고 보니 우리 몰골이 엉망진창이었다.
기정을 네 발로 기다시피 올랐더니 온몸이 가시낭'에 긁혀 성한 데가 없었다.
그나마 천지연 근처 매일시장통에서 잔뼈가 굵은 올레남매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 아이들은 사내애건 계집애건 천지연으로 갈 적에 마을길로둘러서 내려가는 법이 없었다.
지름길인 기정길로쏜살같이 내달렸다.
동작이 굼뜬 운동치에 겁까지 많은 나마저도 벌벌 떨면서도 악착같이 기정길로 오르내렸으니 말해 무엇 하랴.
사람이 걸어가면 길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러나 올레꾼에게 우리 남매처럼 네 발로 기어오르라고 할 순 없는노룻.
길답게 만들어야만 했다.
올레를 만들면서 내건 구호는 다름 아닌 '안티 공구리(콘크리트 포장 절대 반대)'.
자연에 인위적으로 변형을 가하거나 기계를 동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가파른 기정길이니만큼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흙계단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흙을 손으로 턱지게 다져서 계단을 만들기로 했다.
동철이 후배 수봉이가 자원하고 나섰다.
수봉이는 한때 동철이의 '꼬붕이었지만 지금은 어엿한 건설현장 감독이다.
현장에서 노임을 주지 않아 잠시 쉬는 동안에 올레 일을 돕고 있었다.
"누님,나한테 맡깁서. 이건예 노가다판에선 일도 아니라마씸."
며칠 만에 현장에 가봤더니 수봉이는 참하게 흙계단을 만들어놓았다.
그 길을 딛고 내려오면서 들은 공물해안의 파도소리는 그 어떤 음악보다 감동적 이 었다. '
수봉아,올레꾼들이 너를 영원히 기억할 거야.'
(수봉로는 더 이상 흙계단이 아니다.
지난봄 서귀포시가 주최한 한중일 꽃길걷기 대회 때 수봉로가 30킬로미터 코스로 편입되면서 서귀포시에서 약간의 손질을 가했다.
그러나 서귀포시에서도 제주올레의 특성을 감안해 토사가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소박하게 나무만 덧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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